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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방분권 지방자치'는 무늬여야 하나?
[기고] '지방분권 지방자치'는 무늬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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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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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규 전 거제시의원

'지방분권 지방자치'는 무늬여야 하나?

▲ 이행규 전 거제시의원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방자치제의 주권은 지역주민에게 있고, 권력은 주민으로 부터 나온다.

민주정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 '정당공천배제' 약속, 어떻게 돼  갑니까?

'정치를 외면하면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 기원전 400년 민주주의가 시작된 그리스의 플라톤이 강조한 말이지만 최근 우리사회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와 함께 대의 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 발전 과정에서의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중앙권력과 정치로부터 자주적으로 독립된 기관과 주민주권을 말한다. 한마디로 중앙권력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자치권을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주민 스스로가 하게끔 보장되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지방자치라고 한다.

지방 자치(地方自治)를 요약하자면, 자기 지역을 주민 스스로 다스리는 것. 즉, 중앙정치나 권력으로부터 분권(분리)하여 자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제도에 있어 대의민주주의 허점과 직접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보완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말한다.

지방자치는 전통적으로 주민자치와 단체자치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자치단체와 주민과의 관계에 국가(중앙정부)에 의하지 않고 자기들의 의사와 책임 하에 스스로 관련된 사무를 처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후자는 자치단체와 국가의 관계에 법률상으로 법인격을 가진 자치단체가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지위를 가지고 간습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행정권을 가지는 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전자와 후자 정리하자면 정치적으로나 법률적으로 국가(중앙권력)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 독립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왕권시대에서도 존치되었지만, 일제강점기 일제가 우리의 얼과 전통과 문화와 예술과 말과 글을 빼앗고 말살시키기 위해 그들의 영원한 식민지화를 위해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켜 통치하게 한 것이고, 해방이후 미 군정에 의해 지방자치제가 시행되었어나 한국전쟁 이후 유신독재가 되면서 중단되었다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90년 6월 항쟁에 위기에 처한 군사정권 노태우가 불가피하게 부활시킨 것이 지방자치이나 무늬만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일뿐 무소불의의 권력과 재정(선진국의 절반정도의 지방교부세로 예산지원)과 인사권과 감사 권을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으며, 정당공천권 역시 중앙당과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의원에 대하여 2012년 여야가 합의하여 정당공천을 배제하기로 합의하고 대선주자들의 공약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진행되는 안보정국에서도 정치권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관심과 혈안 일뿐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민주주의 발전과 글로벌 시대의 도시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의 흐름에는 안중에 없는듯하다.

지난 해 말 여의도를 밝힌 촛불 혁명은 정당들의 당리당략의 정치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든 촛불 이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한 심판 뒤에 치려지는 첫 국감은 또 한 번의 촛불을 부르고 있지 않는가? 또한 그들이 약속한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배제에 실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정당과 대통령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 하고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사익으로 국정을 농단하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촛불을 통해 전한바 있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박근혜정권이 국민들의 농단한 대가로 탄핵심판을 받은 것은 둘째 치더라도 국민에게 약속한 민주당에 의해 민주주의 발전과 도시경쟁력과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실질적 지름길이 되는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회의 정당공천배제 등을 위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기원전 400년, 플라톤의 말을 되새기며 지켜볼 것이다. '신뢰정치', '약속정치'가 이루어지길 간곡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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